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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했던 시간을 버티게 해준 식물

by somewhere_querencia 2026. 2. 8.

식물과 빛 (어둠속의 희망)

우울했던 시간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마침 코로나 시기였습니다.
세상은 갑자기 멈춰 선 것처럼 느껴졌고, 나 역시 그 안에서 방향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이전처럼 바쁘게 보내던 일상은 사라졌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조차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마음은 공포와 무기력에 잠겨 있었습니다.

마침 부모님은 식당을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대도 있었겠지만, 현실적인 걱정이 더 앞서는 상황이었고 집안 분위기 역시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모두가 여유가 없다 보니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각자의 불안을 조용히 견디고 있었습니다.

앞날에 대한 불안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겹치면서 하루하루가 우울하게 흘러갔습니다. 때는 2019년 겨울이었고, 우리 집은 구조상 햇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구조 었습니다. 낮에도 집 안은 늘 비슷한 밝기였고, 흐린 날에는 시간 감각조차 흐려졌습니다. 이 긴긴 겨울이 끝날 것 같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이 정체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은 더 많아졌고,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습니다. 무언가 작은 변화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식물을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집 안에 뭔가 살아 있는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주 작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큰 계획 없이 작은 식물 하나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나를 버티게 해준것

햇빛이 부족한 환경이었지만, 식물은 생각보다 잘 자랐습니다.
처음에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여서 혹시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몇 주가 지나면서 잎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고, 전에 없던 새 잎이 조심스럽게 올라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변화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느껴본 적이 없던 경험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드면 자연스럽게 식물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흙은 너무 마르지 않았는지, 잎은 어제와 비교해 어떤지 살펴보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물을 주는 날을 기억하고, 식물이 있는 방향으로 커튼을 조금 더 열어주는 사소한 행동들이 반복되면서 하루의 루틴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우울함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불안은 남아 있었고, 마음이 가라앉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예전처럼 모든 시간을 무기력 속에서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다는 작은 변화 었습니다. 식물을 돌보는 시간만큼은 생각이 잠시 멈췄고, 그 순간만큼은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속도로 자라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날에도, 식물은 조용히 자라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조금은 괜찮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식물은 나를 버티게 해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식물 이야기

그 이후로 하나둘씩 다른 식물들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화분 하나였지만, 어느새 창가와 방 한쪽에 여러 식물들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식물이 늘어날수록 관리해야 할 것도 많아졌지만, 그만큼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덜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초록색이 공간을 채우자 집 안 분위기 역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 상태가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식물의 상태를 떠올리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게 되면서 삶에 작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이유 없이 불안해지던 밤도, 식물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좋은 공기를 나에게 건네며 나를 지켜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 잠도 이전보다 깊이 들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남아 있었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감정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웠습니다. 식물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 문제들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조금씩 나에게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에 식물은 단순한 취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나에게 이만한 힐링을 준 것은 없었고, 그래서 지금도 식물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식물을 키우며 겪었던 시행착오와 일상의 기록,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나의 이야기를 천천히 남겨보려 합니다.